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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터키

#389. 자전거 세계여행 - 셀축, 성모 마리아의 집 n 에페수스.

by 상실이남집사 2019. 1. 30.




<2018.09.13.>





아침에도 열이 내리지 않아서 밥도 못먹고,

체크아웃시간까지 비비적거리고

이스탄불에서 구입한 짝꿍님 운동화는 버리고,

이제 체크아웃하고, 돌무쉬를 타려고 밖으로 나왔다.


어제 사우나에서 만난 터키사람이 나를 알아보고

다시 말을 걸어왔고,

이제 집으로 간다고 했다.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이쪽에서는 평범한 이름이였는데...)


우리의 여행이 무사히 마치길 빌어주는 따뜻한 인사도 받았다.


지나가는 돌무쉬에게 손을 흔들고 터미널간다고하면

다른거 타라고 했다가.. 다른거 지나갈 때 손 흔들었는데..

그냥가.........버렸.............

시간도 맞춰나왔는데 심장쫄리게..


그래도 다행히 두번째 오는거 잘 타고

터미널까지 잘 도착했고,

버스도 잘 탔다.....


하아...................

자전거 여행이 확실히 더 쉬운 것 같다.





다행히 늦지않게 잘 도착했고,

터키사람들이 이쪽으로 가라고 손가락으로 가르켜줘서

어렵지 않게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이제 버스를 타고 셀축으로 간다.

동정 마리아의 생가라고 

교황청에서 인정한 그곳.


이슬람이 국교인 이곳에 있는 

마리아의 생가라니..





버스를 타면서 자전거 여행은 한없이 느리구나.. 

라는 것을 세삼스럽게 느끼고 있었고,

버스를 타면 참 빨리 많은 거리를 갈 수 있구나...

라고 또한번 느꼈다.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다보니,

어렵지 않게 셀축에 도착했고,


짝꿍님이 점 찍어 놓은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그나저나 유럽오면서 배드버그 엄청 신경썼는데,

다행히 지금까지 한번도 물리지 않았다.


까다로운 숙소선택 덕분인거겠지?

짝꿍님이 수고가 참 많다.





한국에서 일했었던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은 

피곤해보인 우리에게

따뜻한 차이와 달달한 브라우니를 내주었고,

그의 녹슬지 않은 한국어 실력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사장님 다시 한국가셔도 되겠어요~'



우연찮게도 오늘 핑퐁부부도 

이곳에 도착한다고해서

내일은 같이 택시투어 하기로 했다.


관광루트가 일정하니까 자주겹치네 

크크크



<2018.09.14.>



컨디션이 점점 좋아져야하는데..

아주 느리게 회복되고 있다.


핑퐁부부에게 감기약도 좀 얻어먹고..

내가 아프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아프다니.........흑....





버스터미널에서 핑퐁부부가 먼저 알아놓은 택시타고 

마리아의 집으로 향했다.


고정가격이라 흥정도 안되고... -ㅂ-..

흥정의 나라 터키에서 

고정가격이라니!!!


일단 그렇게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티켓을 구입하고, 

40분 기다려준다고 했는데...


30분이면 넉넉히 

아주~~~ 넉넉히 볼 수 있을정도로 작았다.


대중교통을 만들지 않고..

이렇게 택시나 대형 관광버스만 

접근할 수 있게 되어있었는데..

아마도 이게 정책이건겠지?





드디어 들어가는 마리아 생가.




입구를 지나자마자 보이는 세례터.

바티칸 시티에 있는 천국의 열쇠와 같은 모양이라서

더 말이 많았다고 한다.

(뭐 가져다 붙이는 거야...;; )




그리고 

안쪽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발견한 한글 안내판.


성모 마리아의 집이라고

이렇게 한글로도 자세히 안내되어 있었다.





당신은 무슨이유로 

그런삶을 사시게 되셨나요...

만날 수 있다면 

한번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만날 수 없으니 그냥 머리속에서

이리저리 생각해보는 것이 전부지만 말이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주일마다 야외미사가 열리는 곳이 나타났다.

오늘은 관광객들이 앉아서 설명듣는 곳이되었다.





이곳이 동정 마리아가 죽는 날까지 살았다고 하는 집이다.

지붕도 없고..(아마도 발견당시에 없어졌겠지?)


그랑시 수녀는 이곳 성모마리아의 집에 작은 카톨릭 성당을 세웠고,

1915년 그녀가 선종할때까지 마리아의 집과 

그 주변을 매입해 복구 및

보존하는 일에 매진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의 끝에 1951년 교황바오로 12세는 

성모 마리아의 집을 성지 지위로 격상하였고,


이러한 지위와 특권은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공고히 확정되었다고 한다.


이곳을 방문한 카톨릭 교황은 현재까지 3명.

1967년 교황보오로 6세,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2006년 교황 베네딕트 16세.





내부는 촬영금지지만

밖에는 이렇게 내부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밖에서도 볼 수 있게끔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어서

아쉬우나마 이걸로 대신했다.

정말 좁던데...





그리고 핑퐁부부님이 준비해온 

소원의 벽에 휴지걸기 이벤트!!


다녀간 많은 사람들이 

정말 다양한 언어로 소원을 빌고 걸어놨다.

그분은 이 소원 모두 읽어보시려면,

전세계 언어를 모두 알고 계시는 거겠지?





나는 별로 동참하고싶지 않아서 사진만 찍고,

짝꿍님은 열심히 소원을 적었고,





핑퐁부부님과 함께 소원 휴지를 잘 매달았다.

저 많은 소원을 이뤄주면 

세계가 어떻게 변할까나...





소원 참 많다....

이것도 혹시나 시간이 지나면

수거해서 태우는건가??

아니면 그냥 이대로 두는걸까나...





다시 세례터를 지나서

마리아의 집 밖으로 나왔다.





짝꿍님의 인증샷.

저희도 다녀갑니다.


불교 순례를 위해서 미얀마와 인도를 가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했었고,

계속 방문하겠지?





입구쪽에 이렇게 탄생에 관련된 내용을

만들어 놓았다.



.

.

.



다시 택시를타고 에페수스로 이동했다.

원래 둘만 있었다면 택시 안타고

히치하이킹해서 이곳에 오고싶었는데..

크크크크


택시 아저씨의 마지막 팁!!

안에 들어가면 물이 비싸니까 

이곳에서 사서 들어가라고..


괜찮습니다!! 

저희는 물부자라서요 

크크크

이제 택시 아저씨와 바이바이~





짝꿍님은 이곳이 후문쯤이라고 했다.

일단 티켓을 구입하는데 영어 가이드가 필요없냐고

물어보는 아저씨에게


나는 공부 많이해와서 필요없고,

한국어 아니면 힘들어서 안된다고 이야기하며 안으로 갑시다~


간단한 엑스레이를 통과하고 

드디어 고대도시에 들어섰다.


첨단과 고대의 만남인건가?

크크크





우리가 들어올때는 1인당 40리라였는데..

우리 뒤로 가는 사람들은 일정금액이 올랐다고 한다.

이제 구경을 해 봅시다.





터키에서 만나는 고대로마의 흔적들이다.

이슬람국가에서 기독교 성지순례라니..

아이러니하게 느껴지지만,

이것이 사람사는 것과 뭐가 다르겠나.. 싶다.





복원을 하는거겠지??

길죽한 대리석 기둥들.

저 위에는 어떻게 꾸며져 있었을까?





지금봐도 규모면에서는 참 대단한 로마건축 기술이였지만,

(엄청난 실패를 반복한 끝에 발견하였을테니..)

아쉽게도 그냥 올리는 용도와 아치의 발달로

이렇게 밖에 남지 않은 것은 개인적으로 참 많이 아쉽다.


내 머리속에서는 이제 흔적이 아닌 

번성했을 때의 에페소스를 

머리에 그리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곳은 기둥들이 있고,

지붕들이 있고, 그렇게 에페수스의 대로가 아니였을까...

추측을 하며 걸어갔다.





역시나 이곳에서 

삶의 터전으로 안전하게 살아가는 냥님들.

그렇게 공존하는 터키가 언제나도 한없이 부럽다.


그나저나 저 냥이 잘생겼네~ 크크





고대 원형극장.


주워들은 것을 미뤄서 정리해보면

도시가 번성하면 이렇게 극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유흥을 즐기는 곳을 하나하나 많들어서

사람들이 모이고 함께 즐기게하고 생각하게 하는

문화공간의 중요성을 이당시에도 물론 알고 있었겠지.


지금은 간편하게 재방송을 볼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항상 생방송뿐이였을테고,

그걸 보지 못하면 대화에 참가하는게 힘들었을테니까.


일단 여기는 작은 부분이고,

뒷쪽에가면 더 커다란 원형극장이 있다고 했다.



.

.

.



많은 대리석들로 만들어졌고,

학교와 극장까지 있었던 이 대도시가

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렸을까..?

로마가 망했다고해도 이렇게 흐지부지 사라지는 것은

무언가가 작용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이 거대한 도시를 바라봤다.





이런저런 생각하고 있는데,

짝꿍님의 점프샷 요청!!


오랜만이라 타이밍이 안맞;;





이동네 냥이들은 다들 사람을 잘 따른다.

부르면 야옹거리면서 다가오고,

심지어 저렇게 만져도 귀찮긴하지만,

그래도 참고(?) 쓰다듬을 당한다.

그녀석들 참 귀엽다.


이제는 제주도에서도 적응을 마친 

상실이도 잘 지내고 있겠지??





그렇게 모라시대의 

에페수스의 옛거리에 잠겨, 뛰어다니는 냥이들 바라보며 걸었다.

유명하다는 도서관과 화장실.

그리고 

인류 최초의 광고를 찾아서...





여기저기 널려있는 냥님들.

한번 신나게 괴롭혀줬더니

싫다는 소리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도 했지만...

크크크





이렇게 함께지낼 수 있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못살게 구는걸까나..





짝꿍님의 환한미소를 오랜만에 봤다.

저녀석도 킁킁킁.



.

.

.

.

.

.



승리의 여신인 니케부조.

이부조는 복사품이고,

진품은 박물관에서 보관중이라고.





짝꿍님은 고대도시의 

대로가 느껴지시나요?


제가 볼때는 헤라클레스 포즈 같습니다만;;





그리스도 그렇지만 로마시대의 조각들도

섬세한 조각들이 많았던 것 같다.

아마 우리에게도 이렇게 다루기 좋은 돌이 많았다면,

지금보다 더 많이 돌을 이용한 조각이나 유물들이 남아있었겠지?



.

.

.



대로를 따라서 

저기 끝에 보이는 도서관으로~

햇살이 참 엄청나게 따갑;;





이정도의 크기면 대규모 소비도시였을 것 같은데..

짝꿍님의 말에 의하면 학교도 있었다고 했다.





메듀사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던 신전.

(신전 이름이...........;;

오랫동안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면 이름을 잊어버리는 병에 걸리는 것 같다;; )





저 조각상의 머리는 어디로 갔을까?





드디어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도서관의 위용.





짝꿍님 한장찍어주려다

짝꿍님에게 남 먼저 찍어준다고

욕먹고 나서 찍은 인증샷...


빨리 다른사람을 찍어주고 자리를 만들어야

이런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겁니다;;

흠냥흠냥..





그리고 향한 고대 공동 화장실.

칸막이도 없이...

칸막이가 있었는데, 어떻게 생겼는지

아직 정확히 알아낸 것이 없는 걸까나?

아니면 정말 이렇게 이용을 한 것인가!!!

(후자라고 한다면 중국 뭐라고 할꺼 아닌 거 같다;;)


그리고 아래로는 아마도 

물이 흘러내렸겠지...?

상수도와 하수로를 

이당시에 분리를해서 사용을 했던가...





드디어 메인인 도서관이보인다.





거대하고 웅장하고 멋있었을 것 같은

도서관의 복원되고 있는 모습이였다.





많은 관광객들이 와서 

머물고 구경하고 쉬어갔다.

우리도 그중에 하나이고.

흐흐





이제 인류의 최초라고하는 광고판을

찾아볼까요?





그리고 앞쪽으로 걸어가다보니까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었고,

그곳에 인류가 최초로 광고를 만들어서 사용했다는

발바닥이 나왔다.


'드디어 찾았다.'


그나저나.. 발가락 모양이 참 이상하네...

누구 발바닥이길래...새끼 발가락이 저렇게 짧지..





이제 하일라이트.

거대 원형 극장에 도착했다.

원형극장에서 바라보는 이곳이

예전에 학교로 이용했던 터라고 했다.

어떻게 저런것만 보고 학교인지 알아내는 걸까?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서서

도시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짝꿍님은 뭘 하고 계시는 건가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당시에 살았기에

저렇게 크게 지어놨을까나?





이제 이곳을 떠나는게 아쉬워서

자꾸 뒤돌아보며 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다른 입구쪽으로 나왔더니

저쪽입구에는 없던 기념품 가게들이 있어서 구경~


집에 대리고 오고 싶었던 차이잔들.

아마도 다음에 만나면...

자전거 여행이 아니라, 다른 여행이라면..

이스탄불에도 있을테니까

크크크





유난히도 국기 사랑이 한가득한 터키.

입구정면에는 마을까지가는 돌무쉬가 있어서

저렴하게 마을까지 올 수 있었다.





이제는 핑퐁부부와 작별의 시간.

우리는 이스탄불로 핑퐁부부는 폐티에로 간다.


다음에 만날때까지 건겅하게

그리고 즐겁게 여행을 이어가세요~


그나저나 우리의 여행은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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