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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by 상실이남집사 2008. 12. 16.

삶에는 봄만이 축복받은 계절은 아니다. 겨울도 그 하루하루를 간절하게 느끼며 살아야 할 안타까운 삶의 시간들이다.
그러니 봄이 닥치기전에 우리는 겨울을 온몸으로 남김없이 느끼고 향유하도록 애써야 한다.
인생에서 아름다운 이 젊음이 사라지기 전에 이 젊음만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시간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꽉꽉 차게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연애하는 동안에는 서로 하나로 되고자 하는 너무도 강렬한 열망에 묻혀서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결혼해 보라.무엇이 보이는가. 결국 같음 때문에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다름 때문에 사랑한것이다.

종종 쌍방 간에 연예 시절의 애인과 너무도 다른 결혼상대를 발견하고당혹해한다.


사랑이 식고 위선과 기만이 타로나고 긴장이풀린 탓인가. 그렇지 않다.

낭만의 안개에 덮여 보이지 않던 것들을 이제 투명한 시야에 제대로 보게 된 것뿐이다.

서로의 차이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되는 결환이란 결코 부부가 완전히 일심동체로 되는 과정이 아니다.

반대로 그 차이를 조화롭게 지켜나가는 기나긴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연애나 결혼만이 아니다. 사람이 서로 만나고 사귀고 역사를 만들어 가는 모든 과정이 이와 같다.

가령 학기 초에 새로 같은 반이 되어서 친해지기 시작하는 친구 관계를 생각해 보라.

어느 단계까지는 같은 취미, 같은 생각,같은 믿음들을 확인하며 같이 기뻐하고 같이 즐거워한다.

같은 가수,같은 노래,같은 음식,같은 선생님을 좋아하니 우리가 어찌 숙명의 짝이 아닐 수 있느냐,


그러나 방학이 되어 캠프같은 곳이라도가서 한 사흘쯤 같이 자고 먹고 생활해 보라.

같은 만큼이나 또한 서로 얼마나 다른가.

저 친구는 왜 세면대에 치약같은 것을 뭍히는가.

왜 식사 중에 코를 푸는가. 왜 젓가락만으로 밥을 먹는가.

결국 인간들은 근본적으로 서로에 대해 차이를 지닐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타인의 취향은 내 취향이 아니다. 취향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이것이 시작일 수도 있고, 끝일 수도 있다.



물론 결혼은 시작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끝으로 받아들이려 한다면, 결국 어느 순간에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친구가 나와는 다른 취향을 보이고 그 취향이 내게 거부감을 준다면 자연스럽게 갈등이 솟구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일수록 큰 그림안에서 함께 이룰 조화의 상태를 모색해 보자.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은 친구 사이에 밀착이 아니라 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으로 천재적인 통찰이다. 이 틈이야말로 바로 '어울려 다님'을 가능케 해주는 차이에 다름 아니다.

친구이기 때문에,친구로 함께 사귀고자 하기 때문에,오히려 서로 다른 취향이 필요하다.

취향이 같은 사람들만 끼리끼리 모이는 것은 작당이지사귐이 아니다.

조폭들을 보라.그들은 독같은 두목,똑같은 규율, 똑같은 질서 안엣 똑같은 절차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친구가 만나 서로 우정을 나누는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것은 틈, 다름,차이 불일치들을 그대로 지키면서, 큰 그림안에 엮어서 조화롭고 아름다운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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